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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문 대통령 오른쪽)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윤 총장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문 대통령 오른쪽)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윤 총장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논란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법원이 윤 총장 징계에 효력 중단 결정을 내린지 하루만이다. 문 대통령은 “공정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 등을 거론했다. 사실상 윤 총장을 향한 경고다. 법원 결정으로 윤 총장이 자리를 지키게 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향한 동력이 한풀 꺾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파워볼

2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전하는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을 TV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법원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복귀 결정에 대해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뉴스1
2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전하는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을 TV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법원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복귀 결정에 대해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뉴스1

文, 법원엔 “결정 존중” 국민엔 “사과 말씀”

문 대통령은 이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윤 총장 직무복귀에 대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 정국에서 소모적인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한 사과였다. 이미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기는 했지만, 윤 총장 업무 복귀로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지 못한 측면을 반영한 것으로도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미 지난 7일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고, 16일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하면서도 “매우 송구하다”고 했다. 다만 이날 문 대통령이 사용한 ‘결과적으로’라는 표현에는 ‘검찰 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진통은 불가피하다’는 문 대통령 생각이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관용차를 타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관용차를 타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뉴스1

검찰엔 “성찰하라”… 검찰개혁 완수의지

국민들을 향한 사과와 달리 검찰을 향한 메시지는 단호했다. 문 대통령은 “법원의 판단에 유념하여 검찰도 공정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총장 징계 조치에 대한 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 것이다.파워볼실시간

그러면서 “특히 범죄정보 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사찰한다는 논란이 더 이상 일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날 법원이 윤 총장 징계 절차에 대한 흠결을 지적하면서도, 검찰이 재판부 성향 정보를 수집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판단한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를 두고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야 하는 윤 총장을 향한 구체적 압박이란 관측도 나왔다.

지난 16일 문 대통령에게 윤 총장 징계를 제청하며 사의를 표명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 복귀에 대해선 아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윤 총장은 이날 낮 12시쯤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로 출근해 서울동부구치소 등 수감시설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한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전날 밤 법원 결정으로 징계가 취소된 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상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던 것 이상의 추가 입장 표명은 없었다. 업무에 복귀한 윤 총장은 내년 7월 임기까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4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4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면 전환’ 고심하는 文… 추미애 사표부터?

문 대통령 입장은 법원 판결 하루 만에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추미애ㆍ윤석열 관련) 혼란과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의지가 크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절실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여권에서조차 ‘레임덕’이 거론되는 등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문 대통령이 신속하게 메시지를 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파워볼게임

문 대통령은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인 협조 관계를 통해 검찰 개혁과 수사권 개혁 등의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검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검찰뿐 아니라 법무부에도 ‘안정적인 협조 관계’를 당부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윤 총장과 추 장관이 ‘조화’를 이루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조만간 추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는 쪽으로 상황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현 국면을 전환시킬 만한 뚜렷한 선택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찍고 있고, 백신 도입에 안일했다는 비판까지 이어지면서 국정운영에 비상등이 켜져 있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도 좀처럼 반등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민들이 가려워하는 부분들을 문 대통령이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신년기자회견 등 여러방식의 대국민 소통 방법을 고심 중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아무튼, 주말_김미리 기자의 1 미리]
필리버스터 신기록, 임차인 연설..
무명 초선에서 스타된 윤희숙 의원

5분짜리 임차인 연설, 최장 필리버스터 연설로 여의도에서 주목받는 기대주 윤희숙 의원. 지독한 책벌레인 그는 2주 넘게 서점에 안 가면 정신이 피폐해진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5분짜리 임차인 연설, 최장 필리버스터 연설로 여의도에서 주목받는 기대주 윤희숙 의원. 지독한 책벌레인 그는 2주 넘게 서점에 안 가면 정신이 피폐해진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촬영용 옷을 몇 벌 준비해야 하나요? 저희 의원님, 옷이 몇 벌 없으셔서….” 인터뷰 섭외 전화를 받고 보좌관이 옷 걱정을 했다. 평소 모습이 궁금하니 자연스럽게 나오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며칠 뒤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국민의힘 윤희숙(50·서울 서초갑) 의원은 헐렁한 옷에 ‘할머니 신발’이라고 하는 검정 컴포트 슈즈 차림이었다. “옷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잘 입어서 예뻐진다면 보람 있을 텐데, 제가 그럴 미모는 안 되잖아요?” 가차 없는 ‘셀프 디스’. 자신감이 묻어났다. “일하기 편한 옷이 최고죠. 새벽에 ‘추리닝’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바꿔 입을 때도 많은걸요.” 금배지는 단 적도 없다. 공식 석상에선 검정, 회색 조끼 두 벌로 돌려 막는다. “몸매 가리고 정장 분위기 낼 수 있는 제 나름의 술수랍니다. 하하!”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시원하게 웃었다.

윤 의원은 요즘 정치권에서 떠오르는 기대주 중 하나.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 경제 전문가로 21대 국회에 처음 입성해 맹활약 중이다. 연설 두 건이 무명의 초선을 단숨에 스타로 만드는 지렛대가 됐다. 지난 7월 ‘임대차 3법’ 강행 처리 과정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5분짜리 연설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11~12일엔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12시간 47분)을 세워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서울 시장 후보설도 나왔다. 고성 난무하는 국회에서 모처럼 핏대 세우지 않고 품격 보여주는 실력파란 평가를 받는 그를 만났다.

◇지독한 책벌레… 말과 글은 나의 힘

의원회관 9층, 윤 의원 사무실에 들어서자 커다란 회의 테이블, 담요를 걸친 투박한 3인용 가죽 소파가 보였다. “일할 땐 무조건 큰 테이블이 좋아요. 이거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소파는 잠깐 눈 붙이기용이에요. 꼭두새벽에 나오다 보니 수면이 좀 부족해요.”

—대체 몇 시에 출근하시길래.

“새벽 6시 반이면 사무실에 도착해요. 보좌진은 오전 9시에 출근하고요. 혼자 있는 두 시간 반이 정말 소중해요. 생각이 고이는 시간이에요. 출근길에 들은 라디오 뉴스에서 얘기하고 싶은 사안이 있으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요. 책도 읽고요.”

—애서가(愛書家)인가요?

“1~2주에 한 번은 서점에 가 온종일 책을 봐요. 책 고르는 과정이 꼭 소개팅 같아요. 누가 추천해줘 펼쳤는데 재미없어 실망하기도 하고, 몇 페이지 읽고 이걸 계속 보느냐 마느냐 고민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책을 발견할 때도 있지요.”

—요즘도 가나요?

“그럼요. 지난주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어요. 코로나 때문에 의자를 치워서 두 시간 정도 서서 읽다가 왔어요.”

—사람들이 알아볼 것 같은데.

“10년 넘은 패딩 껴입고 허름하게 다니니 아무도 못 알아봐요(웃음). 특히 주말은 읽고 싶은 책에 푹 빠지는 시간이에요. 저한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내가 보고 싶은 책’과 ‘일로 봐야 하는 책’의 조화를 의미해요.”

—‘인생 책’이 뭔가요.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 ‘외딴 방’. 산업화 시대 여공들의 치열한 삶을 다뤘죠. 경제학자들은 각종 지표를 들이밀며 성장이 얼마나 이뤄졌고 분배가 어떻게 됐느니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주어진 삶을 견뎌낼 뿐이라는 걸 생생하게 보여줘요. 거시 지표에 가린 사람들의 안간힘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죠. 한국말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좋아해요.” 요즘은 앤디 보인튼이 쓴 ‘The Idea Hunter(아이디어 사냥꾼)’ 원서를 보고 있다고 했다.

—연설로 스타가 됐어요. 조선일보 칼럼과 페이스북 글 등으로 글 잘 쓰는 경제 전문가로도 알려졌죠. 언어 감도가 높은 편인가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말’과 ‘글’이라고 믿어요. 사람 마음에 얼마나 와 닿는 언어를 구사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치인의 언어는 더 중요하다고 봐요.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인생 경로를 바꾼 이유이기도 해요.”

—정치와 언어의 상관관계가 뭔가요?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하고 유학(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갔다 와 KDI 들어가기까지 관성적으로 살았어요. 마흔에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나란 사람이 읽고 쓰고 말하면서 생각을 전파하고 다른 사람 변화시키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말과 글로 타인을 변화시키는 연장선에 있는 일이 정치였어요.”

—페북 글 대부분이 정책 대안을 담아 분석적으로 길게 쓴 글이던데요.

“‘왜 그렇게 길게 쓰느냐. 나중에 결국 책잡힌다’고 조언하는 동료 의원도 있어요. 그런데 교수로 안락한 인생을 살다가 정치인이 된 결정적 계기가 지금 우리 사회에 퍼지는 생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에요.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담론을 만들고 싶었어요.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 창구가 페북 글쓰기예요. 그때그때 현안이 있으면 가감 없이 제 의견을 써요. 거기에 누군가의 생각이 달리고 그 생각이 또 누군가의 생각을 자극하죠. 그러면서 담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교수보다 정치인이 담론을 촉발하는 역할에 훨씬 효과적이더군요.”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시절 모습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시절 모습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시절 모습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시절 모습

◇하우스메이트는 서른 살 조카

—인간 윤희숙이 궁금합니다. 결혼은 하셨나요?

“싱글이에요. 언니가 지방에 있어 서울에서 직장 생활 하는 서른 살 조카랑 둘이 살아요. 방배동에 있는 ‘나 홀로 아파트(법적으로 아파트로 분류되는 6층짜리 빌라)’에 세 들어 있어요.”

—비혼주의자인가요?

“전혀요. 지금은 제 삶이 자기 완결적이라…. 필요하면 더 적극적으로 짝을 찾아 나서겠죠. 조카가 요즘 부지런히 소개팅을 하고 다녀 살짝 걱정되긴 해요. 나가면 외로워지려나.”

—책 말고 다른 여가 생활은 없나요?

“작년부터 2년 동안 영국 록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멤버 마크 노플러에게 푹 빠졌어요. 나이 오십에 뒤늦게 아이돌이 생긴 행복이란! 마크 노플러가 1983년 밥 딜런하고 작업한 걸 알게 된 뒤론 관심이 밥 딜런에게까지 옮아갔어요. ‘덕후(하나에 푹 빠져 파고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 기질 농후하죠?”

—살림도 하나요?

“금요일 퇴근 때 동네 수퍼에 들러 채소 몇 가지 사 와 찌개를 한 솥 끓여요. 그걸로 일주일 내내 아침을 때우죠. 물 좀 부어 데워 먹고 또 먹고. 김치·된장·순두부찌개를 한 주씩 돌려요. 하루는 조카랑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 배출 하는 날이고.”

게임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하는 조카는 20~30대 민심을 들여다보는 바로미터다.

—조카를 통해 본 젊은 세대는 어떻던가요.

“정치 전반엔 관심이 없는데 아파트 공급처럼 삶과 직결되는 문제엔 관심이 무척 많아요. 우리 세대는 정치를 관념적으로 생각했는데, 이 세대는 훨씬 현실적으로 봐요. 관념적인 철학은 정치가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하지 그걸 꺼내 사람들에게 주입하려 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수포자(수학 포기자)’ 언니 얘기를 꺼내 공교육 문제를 짚은 글이 화제였어요. 가정 환경은 어땠나요?

“딸 아들 딸 딸. 1남 3녀 중 셋째예요. 아들 하나 더 낳으려 했는데 연달아 딸이 나온 거죠. 부모님은 전형적인 개발 세대예요. 아버지는 부산, 어머니는 경남 김해 출신. 결혼해 숟가락 두 개만 들고 일자리 찾아 서울로 올라와 단칸방에서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는 월급쟁이 하다 자영업을 하셨고요.”

중랑구에서 쭉 살다가 중고등학교는 잠실에서 보냈다. “부모님이 세 살 터울 오빠를 강남 8학군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려고 잠실로 이사하셨어요. 덩달아 저도 거기서 학교(정신여중, 영동여고)를 다녔어요.”

80대 부모님은 둘째 딸이 정치인이 되고 바빠졌다. “엄마는 매일 유튜브 뒤져 저랑 관련된 영상을 보내주시느라 바빠요. 딸이 정치하면서 인생의 무료함은 사라졌는데 걱정이 많아지셨죠.”

—빠른 70년생이죠?

“재수 89학번이에요. 586에 가깝죠. 어쩌면 우리는 학교 때 배워야 했던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불행한 세대예요.”

대학교 2학년 때 일화를 꺼냈다. “필수 과목인 경제 통계 시험 때였어요. 데모 쫓아다니느라 글렀다 싶어 저는 철회했는데 대부분 대리 시험을 쳤어요. 40여 명이 징계를 받았죠. 시험을 대신 쳐줬다가 무기정학 받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중 지금 외국 명문대 교수인 친구들도 있는데, 그 친구들이 징계 풀려고 반성문 쓰고 어찌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당시엔 독재 정권이라는 거악(巨惡)에 맞서 싸우는데 이게 대수냐는 분위기였어요. 룰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본을 학교 때 못 배웠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우리가 편향적이었고, 성실히 자기 삶을 꾸려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제대로 경제활동을 안 하고 주변부만 왔다 갔다 하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이들이 주로 정치권에 와 있어요.”

—운동권이었나요?

“확신이 없어 데모에 기웃기웃하는 젊은 날을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운동권으로 분류했어요. KDI에서 저를 채용할 때 운동 세게 해 편향적인 사람일까 봐 걱정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같은 당 김웅 의원을 보니 왠지 낯이 익다 싶더군요. 데모할 때 깃발 들고 다니던 비쩍 마른 옆 과 학생이었어요. 김웅은 정치과, 저는 경제과. 같은 사회대 소속이었어요.” 두 사람은 ‘숙아’ ‘웅아’ 부르는 동갑내기 절친 동료다.

지난 11~12일 국회 필리버스터에서 12시간 47분 최장 기록을 세웠을 때.   /뉴시스
지난 11~12일 국회 필리버스터에서 12시간 47분 최장 기록을 세웠을 때. /뉴시스

◇화장실도 못 가는 철의 여인?

—5분짜리 ‘임차인 연설’로 정치인 윤희숙 이름 석 자가 대중의 뇌리에 또렷이 박혔습니다.

“주말 동안 갑자기 영상이 확 퍼지는데 신기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막연하게 느끼는 분노와 불안을 명징한 언어로 대변해주는 것, 이 또한 정치라는 걸.”

—연설 이후 집주인 반응이 궁금합니다.

“감히 반응을 살피지 못했어요. 민망해서 나가라고 못하시는 거 아닐까요(웃음).”

—이후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이라는 게 밝혀졌어요. 여당에선 ‘가짜 임차인’이라고 비판했죠? 왜 그 내용은 빠뜨렸나요.

“그 부분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연설의 핵심은 임대차 3법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국회가 반성하자는 것이었으니까요. 메시지의 핵심에 대고 반응하는 게 정치인데, 본질 아닌 부분을 물고 늘어져 공격하는 모습을 보니 하수 같았습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명연설이라고 평했어요. “‘빨갱이’ 소리 하지 않고도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죠.

“고마우면서도, 진 교수 말씀을 보며 우리 당 이미지가 참 고착됐구나 싶었어요. 지금까지 당에서 빨갱이 운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사람들 머리에 그렇게 박혀 있는 거잖아요. 진 교수는 나이 들며 점점 글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날그날 누구보다 날카롭게 현상을 진단하는 것도 대단하고. 자기를 끊임없이 닦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이른바 ‘조국 흑서’ 멤버인 서민 교수도 윤희숙을 기대되는 정치인으로 언급했던데요.

“김웅 의원이 서민 교수 얘기를 하도 하길래 페북 친구 신청을 했더니 1초 만에 수락하더라고요. 냉소적일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재치 넘치고 따뜻한 분이었어요.”

—지난 11일 오후 3시 24분부터 12일 오전 4시 12분까지, 장장 12시간 47분 동안 필리버스터 연설을 했어요. 어떻게 준비했나요.

“갑자기 대타로 올라간 거였어요. 예정돼 있던 동료 의원이 사정이 생겨 대신해 달라고 오전 10시에 문자를 보냈어요. 그때부터 5시간 정도 후다닥 준비했어요. 여당이 일방 처리에 나선 국정원법, 남북 관계 발전법 개정안, 5·18 역사 왜곡 처벌법 등 세 법이 표현의 자유, 기본법을 무시한 법이니 ‘닥쳐 3법’으로 하면 되겠다 싶었죠. 김웅 의원이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장난삼아 ‘닥쳐’ 하는데 그 단어가 떠올랐어요.”

—13시간 가까이 하리라고 예상했나요.

“네다섯 시간 얘기하자는 맘으로 올라갔어요. 하다 보니 동료 의원들이 앞자리로 옮겨 응원하더군요. 내려올 수가 없었어요. 긴장해서 초집중했더니 화장실도 한번 못 갔답니다. 자정 무렵 권성동 의원이 ‘화장실 다녀와’라고 소리쳤어요. ‘아무리 내 나이 오십이지만 그래도 여잔데 주책이야’ 하면서 넘어갔죠.”

—연설에서 “제발 겸손해지자. 법을 만드는 입법부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말자” “이런 기회에 공부도 좀 하자”라고 했지요.

“입법부의 정체성을 공부하자는 얘기였습니다. 국체(國體)의 요체가 삼권분립인데, 행정부와 입법부가 완전히 상하 관계예요. 청와대에서 언제까지 데드라인 맞춰 통과시키라고 하면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켜요. 말도 안 돼요. 국민이 준 권력 앞에 겸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연설 끝나고 ‘철의 여인’ ‘한국의 대처’ ‘걸 크러시’ 같은 별명이 생겼던데요.

“소심해 화장실도 못 갔는데 웬 철의 여인? 교수니까 오래 말하는 건 자신 있고 채울 콘텐츠도 많았는데 체력이 문제였어요. 후반부에 탈장이 좀 일어나 며칠 고생했답니다.”

—대처를 좋아하나요?

“뚜렷한 방향성을 세운 다음 몰고 가는 리더십은 존경하지만 요즘 시대에도 먹힐까 하는 질문엔 물음표가 생겨요. 지금은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는 시대예요. 저마다의 목소리에 가중치를 둬야 해요. 선명한 방향성을 지니고 앞에서 이끌어 가는 ‘대처식 리더십’과 여러 목소리를 종합해 타협을 이끌어 내는 ‘메르켈식 리더십’이 합쳐진 형태가 이상적이에요. ‘대르켈(대처+메르켈)식 리더십’이랄까요.”

—초선, 그것도 여성 의원이 주목받으니 주변 견제는 없던가요.

“당 이미지가 워낙 남성적인데 막상 들어와 보니 수직적 위계가 굉장히 약해 놀랐어요. 원래 더불어민주당은 조직 규율이 세고, 국민의힘은 세대 간 규율이 강했다고 하는데 우리 당은 초선 비율이 60% 정도 돼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유연해졌어요. 견제는 못 느꼈습니다.”

◇포퓰리즘에 펀치 날리는 파이터

국책 기관인 KDI 재직 시절부터 ‘포퓰리즘 파이터’로 유명했다. 좌우 가리지 않고 인기 영합성 정책에 펀치를 날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위원회가 정치 논리로 움직인다는 이유로 사퇴했다. 지난 3월 출간한 저서 ‘정책의 배신’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비정규직 대책, 국민연금 문제, 정년 연장, 신산업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6가지 주요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현 정부 재정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요.

“미래 세대에게 빚을 전가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한국 진보는 환경 얘기를 하면 지속 가능성을 말한다고 반기면서, 재정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수구라고 해요. 지속 가능성의 기본 논리는 지금 세대에게 허용되는 것을 미래 세대에게도 허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환경도, 재정도 같아요. 현 정부는 지금 재정을 당겨 써버리자고 해요. 이러면 미래 세대 때 쓸 재정은 확 쪼그라들어 버려요. 잘못된 정책이죠. 획일적, 급진적인 것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자면요?

“주 52시간제를 보죠. 우리 사회엔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삶’이 더 중요한 사람도 여전히 있어요. 그런 이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주겠다면서 갑자기 근무시간을 줄여 버리면 저녁 먹을 수 있는 삶을 뺏을 수 있어요. ‘노란불 기간’을 주고 소통부터 해야죠. 정부가 나서서 왜 획일적으로 합니까.”

—현안에 대해 적극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를 유예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라고 해 망언 논쟁이 붙기도 했죠.

“역사적 인물인 전태일을 제 방식으로 추모한 거였어요. 논란의 밑바탕은 ‘내가 찬성할 수 없는 방식으로 왜 네가 전태일을 기리느냐’였어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거죠. 역사적 인물은 어느 시대에서건 재해석할 수 있고, 다르게 생각할 여지는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게 자유 민주주의 기본 아닌가요? 저는 ‘쓸데 있는 갈등’ ‘의미 있는 소란’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시작한 지 세 시간이 훌쩍 넘어 점심시간이었다. “배고프죠? 구내식당으로 갑시다. 3900원짜리 국회 밥, 잘 나와요. 남이 해주면 다 맛있지 뭐.” 그가 옷걸이에서 낡은 검정 패딩을 꺼내 입었다. 영락없는 동네 언니였다.

윤희숙 의원이 조끼 차림으로 국회 의사당을 배경으로 섰다. 조끼는 외양보다는 실력, 치장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그를 상징하는 패션이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윤희숙 의원이 조끼 차림으로 국회 의사당을 배경으로 섰다. 조끼는 외양보다는 실력, 치장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그를 상징하는 패션이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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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방역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교정 당국은 서울구치소와 서울동부구치소 등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수용자들이 잇따르자, 수용자와 직원 등을 대상으로 전수검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방역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교정 당국은 서울구치소와 서울동부구치소 등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수용자들이 잇따르자, 수용자와 직원 등을 대상으로 전수검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25일 1241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방역당국이 “지금까지 급작스러운 증가세를 억제하며 1000명대 내로 억누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은 전국 1200명대, 수도권 800명대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수도권 이외의 비수도권 지역도 계속 환자발생이 증가하고 있어 300명대의 환자발생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반장은 “지금까지 급작스러운 증가세를 억제하며 1000명대 내로 억누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라며 “하지만 확실한 감소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 역시 한계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라고 자체 평가했다.

윤 반장은 이날 신규 확진자 수가 최고치를 찍은 배경에 대해 “오늘 확진자 수가 급증한 가장 큰 이유는 서울 동부구치소의 2차 전수검사 결과 288명의 확진자가 나타난 것”이라며 “그 외의 나머지 지역적인 감염 사례는 최근의 추세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러한 상황에서 1000명 수준에서 유지가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신규 확진자 수가 많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동부 구치소 집단 감염을 제외하면 지역사회 감염 규모는 최근 며칠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 수가 1000명 넘어선데 대해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좀 더 높지 않나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간 일 평균 1000명 이상이 넘어선 것은 (구치소) 집단감염이 확인된 때문이다. 서울 동부구치소는 이미 방역망 내에서 관리가 되고 있어서 지역사회로 추가 전파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이어 “정부는 이러한 확산세를 확실히 반전시키기 위해 1월 3일까지 특별방역기간을 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지금부터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 판단한다. 국민들께서 연말연시 특별방역기간 동안 모임과 이동을 삼가주시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주신다면 내년 연초부터는 반전세가 나타나리라 예상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여부에 대해 오는 일요일 관계부처ㆍ지자체와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특별방역기간 동안에는 거리두기 단계 격상 없이 일단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하루 신규 확진자 수 기준으로 보면 3단계 격상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했다는 지적에 대해 손영래 중수본 전략기획반장은 “지금 1000명대 내외로 환자 발생 수가 계속 지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추이가 어떻게 되느냐를 지켜보는게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이어 “두번째로 역학조사와 추적 그리고 격리를 통한 방역적 대응 역량과 환자를 안정적으로 치료시설로 집어넣어서 진료에 임할 수 있는 의료적 역량이 이(환자 발생 양상)를 따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염을 통제해내는 역량들은 계속 유지되고 있고, 의료적 역량도 병상에 대한 여력을 확보하고 치료가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현재 유지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신규 확진자 수가 계속 1000명 이상으로 지속되더라고 방역 역량과 의료 역량이 따라가준다면 3단계 격상을 하지 않겠다는 설명이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수도권 근무 親與 차장검사 2명, 6년전 범죄 전력 발각됐지만.. 3년 징계시효 지나 경고만 받아

수도권의 한 검찰청 소속 차장검사 2명이 과거 중징계를 피하기 위해 검사 신분을 숨긴 채 음주운전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지만 현 정권 들어 승진하고 요직에 임명되면서 오히려 승승장구해 온 것으로 25일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선 “두 사람 다 친(親)정권 성향”이라며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 이후 그런 유형의 검사들만 발탁하는 인사가 반복돼 왔다”는 비판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가운데 8일 오후 인천지방경찰청 연수경찰서 경비교통과 경찰들이 인천시 연수구 국제업무지구역 도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2020.12.08./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가운데 8일 오후 인천지방경찰청 연수경찰서 경비교통과 경찰들이 인천시 연수구 국제업무지구역 도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2020.12.08./뉴시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B 차장은 과거 지방검찰청에서 재직할 당시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으며 경찰 조사에선 ‘무직’ 등으로 신분을 속였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공무원이 음주운전에 걸리면 해당 기관에 통보하게 돼 있고 특히 검사는 중징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신분 세탁’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음주 전력은 수년간 드러나지 않다가 2014년 범죄 경력 조회가 이뤄지는 승진 심사, 검사 적격 심사에서 발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징계시효(3년)가 지난 뒤여서 A 차장은 구두 경고를, B 차장은 서면 경고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출신의 한 법조인은 “두 사람 같은 경우에는 징계시효 경과로 경징계하는 대신, 인사 때 불이익을 줘 중요 보직에 진출할 수 없게 만드는 게 통상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 정부 청와대가 고위 검사 인사 검증을 강화했음에도 서울 주요 지검의 부장검사 보직을 거쳤으며 올 들어서는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한발 앞서 수도권 핵심 검찰청의 차장으로 승진했다.

검찰 내부에서 이 두 사람은 ‘친정권’ 검사로 통한다. B 차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대학 직계 후배로, 올 6월 서울중앙지검에서 대형 금융 사건 초기 수사를 지휘하면서 여권 로비 의혹을 몇 달간 뭉갰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 9월 다른 지검의 차장검사로 승진한 뒤에는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또 다른 중요 금융 사건을 지휘하고 있다.

A 차장은 지난달 추미애 법무장관의 지휘·감찰권 남용을 비판하는 댓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린 부하 검사를 회의 석상에서 질책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현 정권이 ‘충성’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이들을 내년 1월 고위 간부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시킬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A 차장은 본지 통화에서 “이미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고 지금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며 “(추 장관 비판 글을 올린) 부하 검사를 질책했다는 것은 악의적 소문”이라고 했고, B 차장은 “오래전 일로 (적발 당시) 개인적으로 창피하기도 하고 조직에 부담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8년 고시 생활
‘늦깎이 변호사’ 권진성

비번(非番)이었다.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잠깐 쉬고 있었다. 오후 느지막이 시내나 들러볼 참이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형님! 합격자 명단에 형님 이름이 있어요!” 친한 변호사 후배가 들떠 전화를 했다. 고시를 시작한 지 28년 만에 받은 합격 통보. 믿기 어려웠다. 떨리는 손을 붙잡고 9차 변호사 시험 합격자 명단을 찾았다. ‘수험번호 12286, 권진성’. 이름 석 자가 선명했다. 지난 4월 24일, 아파트 경비원 권진성(54)은 그렇게 변호사가 됐다.

본격적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 부산지법 앞 사무실에서 ‘새내기 변호사’ 권씨를 만났다. 손은 주름투성이에 머리도 희끗희끗했다. “양복 입고 출근하는 게 영 어색하네요.” 수습 중이라는 권씨가 수줍게 웃었다.

“그간 공부했던 책이 족히 1000권은 될 거예요.” 28년 고시 공부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권진성씨가 웃었다. 로스쿨 재학 시절 공부했던 책을 손에 한 아름 안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그간 공부했던 책이 족히 1000권은 될 거예요.” 28년 고시 공부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권진성씨가 웃었다. 로스쿨 재학 시절 공부했던 책을 손에 한 아름 안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어머니와 한 약속, 드디어 이뤘다”

-28년 만의 합격. 그 순간이 오니 어떻던가요.

“막상 합격하니 눈물은 안 나고 그저 얼떨떨했어요(웃음). 믿기지 않아 합격자 명단에서 몇 번이나 이름을 확인하고선 어머니께 전화 드렸어요. ‘잘했다, 내 새끼. 될 줄 알았다’ 하시더라고요.”

전남 곡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다섯 남매를 홀로 키우게 된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아 충청도⋅경상도를 떠돌았다. 초등학교 때만 여섯 번 전학을 다녔다. 그러다 친가가 있는 부산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월셋집에서 하숙을 쳤고, 권씨는 1984년 동아대 법대에 입학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동기다.

-왜 법대에 갔습니까.

“어릴 때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전학을 많이 다녀 친구 사귀기가 어려워 선생님한테 의지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부산교대에 갈 성적이 안 됐어요. 고민하던 차에, 친형이 어디서 구했는지 ‘고시 합격 수기’를 건넸어요. 하나하나 감동이더군요. 그때 결심했죠. 나도 고시에 붙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고. 대학 1학년 때 어머니께 고시에 꼭 합격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36년 만에 지켰군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제가 고시를 안 했겠죠(웃음). 1992년 처음 행정고시 준비를 시작하고 2년 만에 1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2차 시험을 보고 나오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척 붙을 줄로만 알고 시험 직후 아내와 신혼여행을 다녀왔죠. 그런데 불합격이었어요. 3년 후 다시 1차 시험에 붙고 ‘이번에는 정말 합격이다’라는 생각에 딸을 낳았는데, 또 2차에서 떨어져 버렸어요. 행시와 사시를 합쳐 1차 시험만 여섯 번 붙고, 2차 시험에선 열두 번 떨어졌어요.”

-공부를 게을리한 건 아닐까요.

“동아대 기숙 고시반 이름이 ‘지독료’입니다. 말 그대로 ‘지독하게 공부하라’는 뜻이죠. 거기서 ‘왕고’ 생활을 10년 넘게 했어요. 법전을 하도 오래 보다 보니 매일 잠꼬대로 법전을 외웠나봐요. 옆방 학생이 ‘저 형 미친 것 같다’고 교수님께 일러바친 적도 있어요.”

동아대 고시반 ‘지독료’ 시절 권씨를 찾은 아내와 자녀들. 아빠가 집에 가지 못하니 자식들이 학교로 놀러 가곤 했다. /권진성
동아대 고시반 ‘지독료’ 시절 권씨를 찾은 아내와 자녀들. 아빠가 집에 가지 못하니 자식들이 학교로 놀러 가곤 했다. /권진성

-좌절이 거듭되니 심적으로 힘든 날도 많았을 텐데요.

“그래서 매일 산을 탔습니다. 등산한 게 아니고, 두 시간 정도 미친 듯이 뛰어다녔죠. 육체가 괴로우면 잠시나마 정신적 고통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고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던데, ‘난 고시할 운이 아닌가 보다’ 생각한 적은 없나요.

“해마다 선택의 순간을 맞았어요. 1차 합격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더 고민됐죠.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마다 ‘고시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자’는 생각과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충돌했어요. 결국 제 대답은 늘 같았어요. ‘될 때까지 한다’. 그런데 쉰 살이 넘어가면서 ‘세상에 할 수 없는 일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감을 잃은 건가요?

“체력 한계를 느꼈습니다. 허리가 안 좋아 책상에 오래 앉아 있기 어려웠어요. 집중도 잘 안 되고요. 그래서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진학을 택한 거예요.”

◇낮엔 로스쿨생, 밤엔 경비원

2015년 동아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같은 학교에 학부생으로 입학한 지 31년 만이었다. 권씨는 “경비 일을 한 덕”이라고 했다.

-경비 일 덕이라고요?

“제가 법대 옆 건물에서 경비를 섰는데, 그 건물에 헬스장이 있었어요. 거기 다니는 법대 후배가 ‘형님, 저 로스쿨 갔어요’ 하더라고요. 로스쿨이 생겼다는 얘기만 들었지 어떤 곳인지는 몰랐던 때였어요. 후배한테 자세히 들어보니 고시 공부를 오래 했던 저 같은 사람한테는 수월한 길 같더군요. 그래서 지원했죠.” 낮에는 로스쿨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 밤에는 옆 건물 경비를 섰다.

-경비 일은 언제부터 했나요.

“10년 전부터요. 그전엔 치킨 가게 운영도 하고, 단란주점 청소도 했고요. 아이들 태어나면서 1년에 8개월은 일해서 생활비 벌고, 4개월은 변호사 시험 공부에 올인했어요. 경비 일은 짬짬이 공부하기에 좋아 오래 했습니다.”

-주독야경(晝讀夜耕)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야간 근무 많은 날은 수업 때 꾸벅꾸벅 졸아요. 다행히 대부분 아는 내용이라 시험은 잘 봤어요.”

아무튼주말 권진성 변호사
아무튼주말 권진성 변호사

-동기들이 자식뻘 아닌가요. 쑥스럽진 않던가요.

“전혀요. 잘못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부끄러워요? 동기들도 살갑게 대해줬어요. 경비 서다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고, 저를 ‘형, 오빠’라 부르면서 고민 상담 해오는 친구도 많았고요.”

로스쿨 졸업 후 또 좌절을 반복했다. 변호사 시험에 두 번 낙방했다. 올해 세 번째 도전해 합격증을 받아들었다.

-실패에 인이 박였을 법해요. 다른 길은 없었을까요.

“아뇨. 변호사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젊어서부터 고민 들어주는 일을 좋아했고, 법 공부도 워낙 적성에 맞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눈앞에 두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반평생 고시 생활은 가족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아빠로서 저는 말 그대로 빵점입니다. 공부하느라 아이들 놀이공원 한번 데려간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절 보러 고시반에 자주 놀러왔는데, 아들은 ‘아빠가 고시반에서 짜장면 사주던 게 아빠와의 유일한 추억’이라고 하더군요. 아내는 제 뒷바라지를 하느라 신발 공장에서 일감을 떼와 부업을 했어요.”

-가족이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제 고집이 워낙 세서 그런지, 아내는 반대한 적은 없어요. 다만 딸이 언젠가 얘기하더군요. ‘아빠, 포기하는 것도 용기 아닐까?’ 제가 그랬어요. 자기 의지에 따라서 자기 삶을 펼쳐나가는 자체가 행복한 삶이 아니겠냐고. 설사 마지막까지 변호사 시험에 떨어졌다 해도 후회하진 않았을 겁니다.”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폐암을 앓고 계셨는데, 합격 소식을 전해드린 지 20여 일 만에 의식을 잃으셨어요. 몇 주 동안 투병하시다 지난 6월 돌아가셨죠. 그래도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20일은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그간 공부하며 읽었던 책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자동차가 없어 모두 가져가긴 어렵다’며 로스쿨 때 썼던 책 30여 권을 가져왔다. 차상위 계층인 그는 지금 월세 7만원짜리 공공 임대주택에 산다. “느지막이 인생 2막이 열린 기분입니다. 이제 남은 삶은 그간 저를 위해 희생해준 가족에게 바칠 겁니다.”

/부산=유종헌 기자ⓒ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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