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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프리미이어리그 출범 이후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 30년만의 우승에 팬들과 선수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지만 일부 리버풀 팬들이 소동을 일으킨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동행복권파워볼

리버풀의 우승이 확정되자 리버풀의 홈 구장인 안필드와 리버풀의 랜드마크인 로얄 라이버 빌딩 앞에는 수많은 리버풀 팬들이 몰려들었다. 코로나 19 시국에 경기도 무관중 경기로 치뤄지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 없이 팬들은 마스크도 없이 모여들어 우승을 자축했다. 현지 언론에서도 이로 인한 집단 감염을 우려하고 있을 정도다.

우승 자축은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사람이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이에 일반인들은 물론 경찰과 정치인들까지 나서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리버풀의 파티는 격렬했던 것이었다. 조 앤더슨 리버풀 시장은 SNS를 통해 인파가 몰리는 것에 대해 “정말 우려스럽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의회가 집회를 해산시킬 힘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리버풀 팬들이 축하해 주고 싶어 하는 것은 고맙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제발 집에 가서 집에서 축하해줬으면 좋겠다. 코로나 19는 여전히 큰 위험이고 우리 도시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병으로 잃었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축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이야기한 앤더슨 시장은 향후에 있을 우승 퍼레이드에 대해 “정말 안전한 상황이 온다면 공식적인 우승 퍼레이드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리버풀 시의회는 7월 시즌 막판 이 같은 성과를 ‘적절한 방식’으로 표시하기 위한 대안들이 마련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앞으로 있을 우승 퍼레이드에 모이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또한 작은 소동도 일어났다. SNS에는 리버풀 팬들이 로얄 라이버 빌딩 앞에서 폭죽을 터뜨렸고, 이 폭죽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로얄 라이버 빌딩의 발코니로 향해 폭발하며 불이나는 영상이 퍼졌다. 리버풀 에코에 따르면 구조대의 말을 인용, “폭죽으로 인해 라이버 빌딩에 약간의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대원들이 사건을 처리했고 화재는 이제 다 꺼졌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1911년부터 100년 넘게 이어져온 건축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리버풀 경찰은 머지사이드 지역의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건수가 전국 다른 지역에 비해 여전히 불균형하게 많다고 지적했다. 머지사이드 경찰서의 존 로이 경감은 “30년 만에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 되는 것을 축하하고 싶어하고 팬들이 팀과 함께 축하하고 그들의 성과에 박수를 보낼 때가 올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선수와 감독, 구단의 조언을 따라라. 구단 역시 집에서 축하하라고 독려하고 있으며 집에서 그 기쁨을 나눠라.”라고 이야기하며 지금은 모일 때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스타뉴스 이원희 기자]

리즈 유나이티드의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사진=AFPBBNews=뉴스1축구 관중석에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등장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리즈 유나이티드로선 망신스러운 일이다.파워볼사이트

미국의 TMZ스포츠는 26일(한국시간) “리즈 유나이티드의 경기장 관중석에 빈 라덴의 사진이 걸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열리는 가운데, 리즈 유나이티드는 1만 5000명 팬들의 사진을 관중석에 채워 넣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팬이 자신의 사진이 아닌, 빈 라덴 사진을 제출한 것이다.

이를 확인하지 못한 리즈 유나이티드는 그대로 빈 라덴 사진을 관중석에 내걸었다. 이 사실은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보도에 따르면 리즈 유나이티드 구단 관계자는 늦게나마 빈 라덴 사진이 설치된 것을 확인하고 실수를 인정했다고 한다. 또한 “앞으로 부적절한 사진이 사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리즈 유나이티드 경기장에 등장한 오사마 빈 라덴 사진(빨간색 화살표). /사진=미국 TMZ스포츠 캡처빈 라덴은 2001년 9·11 테러 등을 주도한 테러리스트로 유명한 인물이다. 2011년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

한편 잉글랜드 명문클럽으로 꼽히는 리즈 유나이티드는 올 시즌 21승 8무 9패(승점 71)로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1부리그 승격이 유력한 상태다. 지난 22일 카디프시티와 원정경기에서는 슈팅 17개를 날리고도 골을 넣지 못해 0-2로 패했다.

사진캡처=더선[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리버풀이 마침내 웃었다.파워볼게임

30년만에 정상에 섰다. 역시 일등공신은 위르겐 클롭 감독이다. 2015년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은 클롭 감독은 빠르게 리버풀을 바꿔나갔다. 유럽챔피언스리그, 클럽월드컵 등을 차례로 거머쥔 클롭 감독은 마침내 리버풀의 한과도 같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다. 2015년 클롭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토트넘과의 원정경기 라인업을 보면 클롭 감독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어왔는지 볼 수 있다. 당시 4-2-3-1을 썼던 리버풀은 최전방에 오리기, 2선에는 밀너-쿠티뉴-랄라나가 자리했다. 3선에는 엠레 찬과 루카스가 섰다. 포백을 보면 그야말로 한숨이 나온다. 모레노-사코-스크르텔-클라인이 이뤘다. 골문은 미놀레가 지켰다.

당시 선수 중 남아 있는 선수는 오리기, 밀너, 랄라나 정도다. 그나마도 백업이다. 적절한 투자와 과감한 유스 기동 등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빈틈없는 라인업과 달리 구멍 투성이다. 클롭 감독은 4년 가까이 리빌딩을 진행하며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 정상급 클럽으로 만들었다.

[일간스포츠 최용재]

연합뉴스
스티브 브루스 뉴캐슬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 미드필더 케빈 더 브라위너를 향해 찬사를 던졌다.

브루스 감독은 더 브라위너 팬으로 알려져 있는 지도자다. 뉴캐슬은 오는 29일 맨체스터 시티와 FA컵 8강전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브루스 감독은 더 브라위너에 대한 진심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더 브라위너보다 위대한 미드필더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뒤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브루스 감독은 “더 브라위너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선수다.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패스도 환상적이다. 또 너무나 아름다운 패싱력을 자랑한다. 그는 위대한 선수다. 인품까지 갖췄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다. 꼭 함께 해보고 싶은 선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전설적인 미드필더로 꼽히는 로이 킨과 브라이언 롭슨의 이름을 꺼냈다. 브루스 감독은 “누군가는 위대한 미드필더로 로이 킨과 브라이언 롭슨을 이야기 한다. 더 브라위너 역시 이들과 같은 위대한 선수로 불릴 만한 가치를 가졌다. 그는 아름다운 축구를 한다”고 팬심을 표현했다.

(베스트 일레븐)

2019-2020시즌 도중 리버풀로 이적한 미나미노 타쿠미가 오자마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을 경험했다. 미나미노로서는 애매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리버풀이 우승하는 데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미나미노는 그저 우승 메달을 받을 수 있는 다섯 경기 출전 기준에 충족했을 뿐이다.

한편 일본 언론 <니칸 스포츠>는 “미나미노는 일본인으로 네 번째 EPL 우승을 맛봤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미나미노가 어떻게 네 번째가 되냐면 2016년의 오카자키 신지, 2013년의 카가와 신지, 그리고 2002년의 이나모토 준이치까지 계산해서다. 오카자키와 카가와는 분명 우승에 일조했다. 오카자키는 제이미 바디와 호흡을 맞춰 레스터 시티의 전방을 책임졌으며 카가와도 우승 시즌 20경기에 출전해 여섯 골을 터뜨리며 팀원 중 한 명으로서 소임은 다했다.

그러나 이나모토는 아니다. 이나모토는 아스널이 정상에 오른 2001-2002시즌 EPL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리그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를 합쳐 네 번 그라운드를 밟았을 뿐, 아스널의 EPL 레이스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나모토의 커리어엔 아스널의 우승 기록이 포함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칸 스포츠>는 “이나모토를 포함하면 미나미노가 네 번째다”라고 언급했다. 다섯 경기에 출전하고 트로피를 품에 안은 미나미노도 오죽 어색할 텐데, 현재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나모토로서는 언론의 이런 보도에 정말이지 머쓱하거나 민망할 수밖에 없다.

▲ 세르비아 대표팀 출신 그리고 제2의 네드베드로 불렸던 크라시치
▲ 1984년생 크라시치, 2010년 유벤투스 입단하며 화제
▲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빠른 발 자랑했지만, 테크닉에서 네드베드와 너무 달라
▲ 유벤투스 떠난 크라시치, 2018년 12월 끝으로 현역 은퇴 선언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선수들. 혹은 큰 기대를 받고도 이를 채우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춘 선수들까지. 그래서 준비했다.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소식은 접하기 힘든 선수들. 축구계 슈가맨들을 재조명하겠다

[골닷컴] 박문수 기자 = 금발 머리,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동유럽 출신 유벤티노.

여기까지만 보면, 대다수 축구 팬은 ‘파벨 네드베드’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네드베드는 유벤투스의 레전드이며, 지금도 팀의 부회장으로서 은퇴 후에도 유벤투스와 연을 이어가고 있다.

네드베드가 현역 은퇴를 선언한 지 일 년 만에 유벤투스는 또 한 명의 네드베드를 영입했다. 동유럽 출신에 신장도 비슷했다. 금발 머리 휘날리며, 측면에서 번개 같은 움직임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 선수. 네드베드와 너무 달랐다. 빠르고 잘 차는데, 기술까지 좋은 네드베드와 달리 일정한 패턴에 발목이 잡혔다.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이번 시간 주인공은 한때 ‘제2의 네드베드’로 불렸던 세르비아 출신 윙어 밀로스 크라시치다.

# 크라시치는 누구?
1984년생이다.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 클럽에서 프로 데뷔해, 1군 무대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2004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그는 러시아 강호 CSKA 모스크바에 입단했다. 모스크바 그리고 세르비아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을 무기로 주가 상승했다. 덕분에 2010년 네드베드 은퇴 이후 측면 구심점을 잃은 유벤투스 영입 레이더망에 포착됐고, 세리에A 무대에 입성했다.

여기서 잠깐. 네드베드는 주로 왼쪽에서 뛰었지만, 크라시치는 유벤투스 시절 오른쪽에서 활약했다. 스타일은 비슷할 수 있지만, 네드베드와는 비슷하면서도 여러모로 다른 선수였다.

시즌 초반만 해도 굉장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렇게 터키와 프랑스를 거쳐 2015년부터 폴란드 리그로 무대를 옮겼고, 2018년 12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선정 이유
기대감은 상당했다. 초반만 해도 좋았다. 그러나 패턴이 너무 뻔했다. 직선적인 선수였다. 네드베드와 자주 비교되지만, 네드베드는 발도 빠른데 기술도 좋은 선수였다. 반면 크라시치의 경우 드리블은 효율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수비력이 강점인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시즌 초반이야 상대가 크라시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당했지만, 시즌을 치를수록 공략법이 나왔다.

아르연 로번처럼 알고도 당하는 선수면 모를까, 크라시치는 모두가 아는 선수이기 때문에 막히고 말았다. 2010/2011시즌 전반기만 해도, 유벤투스를 대표하는 윙어로 꼽혔지만, 후반기 들어서는 여러 차례 고전했다. 콘테 감독이 부임한 2011/2012시즌부터는 아예 전력 외 자원이 됐다. 당시 유벤투스는 무패 우승을 차지했지만, 2011/2012시즌 후반기 들어서는 선발이나 교체 출전은 물론, 소집 명단에도 뽑히지 않았다.

크라시치 영입으로 내심 네드베드 재림을 기대했던 유벤투스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이적이 됐다. 크라시치는 빅리그에서 실패한 윙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2012년 페네르바체와 바스티아(2013/2014시즌)를 거쳐 2015년에는 폴란드 리그의 레히아 그단스크로 이적해 2018년 12월 현역 은퇴했다.

# 전성기는 언제
유벤투스 이적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크라시치 커리어 하이 시즌은 2008/2009시즌과 2009/2010시즌이다.

2008/2009시즌에는 컵대회 포함 총 39경기에 나와 9골 12도움을 기록했다. 세르비아 대표팀의 오른쪽 주전 윙어로 낙점되며,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행을 도왔다. 그 다음 시즌에는 25경기에 나와 6골을 가동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예선에서만 4골을 가동하며 CSKA 모스크바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세비야를 제압한 CSKA 모스크바는 8강에서 해당 시즌 대회 우승팀 인테르에 2패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세르비아의 본선 탈락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호주와의 최종전에서는 교체 아웃됐지만, 이전 두 경기에서는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월드컵 이후에는 대표팀 소집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1년 11월 친선전 2연전 이후에는 대표팀과의 연도 멀어졌다.

# 축구계 슈가맨을 찾아서 다음 주자는 누구
남미 출신 대표 꽃미남 중 한 명. 5대 리그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을 보유 중인 팀에 입단하며 화제를 모았다. 잠재력은 좋았지만, 끝내 터뜨리지 못했다. 이후 프리미어리그로 둥지를 옮겼고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2% 부족했다. 한 때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클럽에서도 몸 담았다. 이후 저니맨이 된 그는 2016년부터는 유소년팀 시절 뛰었던 친정팀에서 활약 중이다. 참고로 한국 나이 40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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